‘쿡방’과 ‘먹방’이 본격 유행하기 시작한 작년부터는 한의원에 방문하거나 온라인으로 상담하는 분 중 특정 음식을 언급하면서 ‘먹어도 괜찮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이미 방송에 ‘달고 짠 음식’으로 소개된 음식들이 대부분인데, 필자의 ‘먹지 말라’는 말로 본인의 식욕을 잠시라도 누르려고 일부러 하는 질문이다.
본인이 이미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리다. 이런 경우에는 상담에 큰 어려움이 없다. 진짜 난관은 문제가 없어 보이는 데 문제 있는 음식들에 있다. 가령 건강에 좋은 음식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과일이 그렇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생과일주스 전문점들만 봐도 사람들이 과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과일에 당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서 알지만, 과일 주스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여긴다.
생과일을 주스로 섭취하게 되면 식이섬유가 파괴되면서 당 수치가 크게 상승한다. 지난달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중의 생과일주스 한 잔에는 '하루' 당 섭취 권고량인 50g을 초과하는 55g의 당이 평균적으로 함유돼 있다. 원래 과일이 가지고 있는 과당에 시럽까지 첨가된 결과다.
당은 단기적으로 소화능력을 떨어트리고 장기적으로는 장 내에 나쁜 세균이 증식하게 만드는 데도 일조한다. 인간의 장은 비피더스균과 각종 유산균으로 대표되는 ‘유익균’의 비율이 85%, 대장균이나 포도구균으로 대표되는 ‘유해균’, 기회감염균이라고도 불리는 ‘유인균’이 15%로 유지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장내 세균 중 유해균이 증가하면 장에서는 일종의 ‘부패’가 일어난다. 몸에 해로운 가스가 생기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이 유해균의 가장 좋은 먹이가 바로 단 음식과 단 과일에 있는 ‘당’이다.
당 섭취를 무조건 피하거나 매일의 식사를 하루 섭취권장량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채소에 속하는 토마토나 당이 적게 함유된 키위 같은 과일은 적당량 주스로 마셔도 좋다. 단맛 없이 먹기 힘들다면 프락토 올리고당을 조금 넣어서 먹으면 된다. 프락토 올리고당은 곡물로 만든 올리고당보다 식이섬유가 5배 높고 열량은 30% 낮다.
필자의 직업이 한의사다 보니 ‘내 체질에 맞는 음식과 과일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그때마다 체질에 맞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먹은 음식을 흡수하는 장의 건강 상태라고 답한다.
생과일주스 섭취가 좋은가 나쁜가에 대한 질문에도 답은 마찬가지다. 먹는 사람의 장 건강에 따라서 누구에게는 비타민 음료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독주가 될 수 있다. 음식이 가진 자체의 성분을 찾아 아는 노력만큼 장의 대사과정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 = 변한의원 변기원 원장 (한의사)>